Monday, August 12, 2013

[Shanghai Noon] (2000)


- 온갖 단상들.

*초반에 오만 사건들이 굉장히 빠른 페이스로 펼쳐진다. 사실 성룡과 오웬 윌슨이 만난 다음에야 비로소 이 영화는 본격적으로 숨을 가다듬고 '플롯'을 전개할 뿐이다. 그래서 당신은 등장인물에 대해 굉장히 피상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영화를 보게 되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그닥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 같지는 않다. 이것은 그런 영화다.

** 가령 이렇다: 성룡이 '공주'에 대해 가지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는 사실 모호하게 표현된다. 공주가 떨어뜨리고 간 [개구리 왕자] 를 소중히 읽는 것으로 보아 연모의 마음을 품는 것 같긴 한데, 그것은 다시 왕가에 대한 충성과 'Imperial Guard'라는 자부심에 섞여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래, 애초에 성룡은 왜 공주를 좋아했다는 말인가? 라고 물으라치면, 영화가 씩 웃으며 대답한다. "안알랴줌"

한편 공주가 성룡에 대해 갖는 감정은 그 반의 반 만큼도 표현되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사람 취급도 하질 않고, 나중에 독대했을 때는 'it's very kind of you'라는 말로 감사를 표시하는 정도.

그런데 둘이 맺어진다. 스토리는 운명처럼 주어져있으며, 등장인물들은 그것을 꾸역 꾸역-  정말 말 그대로 꾸역 꾸역- 따라간다. 설득력이 부족하다면 '뭐 이쪽 영화가 다 그렇지' 하고 웃어 넘겨버리면 되니까.

(그래서 스포일러를 해도 별 감정이 없다.)

*** 때문에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영화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는 '이쪽 영화'  에 대해 사전 지식을 갖고 보는 편이 낫다. 가령 존 웨인(John Wayne)이라는 이름이나 그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모른다면 성룡의 영화 속 이름인 Chong Wang (총 웽..이라 읽는다) 이 왜 유머의 소재가 되는지 조차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부족한 플롯은 서부극이나 무술 영화 등등에서 끌어온 클리쉐로 땜질한다. 인디언 여인이 계속 등장해서 주인공들을 구해주는데, 그녀가 대체 어디에 있었으며/ 뭘 하며/  무슨 동기를 가지고 있는지 영화는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그냥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구해주는 '턱시도 가면' 같은 존재인데, 클리쉐니까,  그리고 솔직히 우리가  이 영화에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으니까, 그냥 넘어가는 거다.

**** 사실 그래서 x같은 부분이 발생한다. 클리쉐를 적극 활용한다는 것은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stereotype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손대지 않는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 중, 고정 관념에 반하는 이들은 대개 미국 역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등장한다. 가령 중국인 노예를 부리는 악덕 광산주는 중국 황실에 원한을 품은 중국인으로 등장한다. 거듭 등장하는 China man이라는 말이  실제로 서부에서 만연했던 인종 차별을 언뜻 암시하지만 유쾌하고 잘 웃고 착한 오웬 윌슨 앞에선 모든 게 농담같다. 여기에 목숨도 한번 살려주면 오웬 윌슨의 진심은 이해가 되고 갈등은 눈 녹듯 해결.

게다가 오웬 윌슨에게 '친구가 되자' 고 구걸하듯 말하는 것은- 혹은 '친구가 되지 않았다' 는 사실에 삐져버리는 것은- 중국인인 성룡 아닌가. "놀자고 하면 놀아주면 되지" 라는 미국의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하지만 먼저 우정을 구걸하는 것을 보고 싶진 않겠지. 그건 uncool할 뿐더러,  '그림'도 별로니까.

*****아버지와 딸에 대한 관계에 대해 이 영화는 한편 재미있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도 '유색인종의 가족' 에 한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지만. (인디언/ 중국인) 가령 공주는 정략 결혼을 피해 미국으로 도망가고, 인디언 여인 역시 부족이 맺어준 정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이것을 감독은 단순히 미국이니까, 가능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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