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ugust 16, 2013

이오공감- 사랑이 그리운 날들에.



사랑이 그리운 날들에
웃으며 다가온 그댄
정말 내게
필요한가요

그대를 알 수가 없어요
그대를 느낄 수 없어요

이런 내게 미움만 쌓여가나봐-


1. 오태호의 멜로디보다는 가사를 더욱 좋아한다. 적어도 내가 당장 기억할 수 있는 오태호의 노랫 말들은 모두 그가 작곡한 멜로디 위에 입혀졌으므로, 둘을 정말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2. 오태호의 가사는 항상 '안될 것' 이라는 정서로 시작한다. 한국 가요에는 쓸데없는 고민들이 많거나, (찌질한)'상상 연애'가 지나치게 많이 묘사된다는 누군가의 지적에서 오태호도 아마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  오히려 그 주범이라면 주범이겠지. 오태호의 가사 속에서 이미 사랑은 끝났거나,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전자에는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나 [I Miss You]가 있을 것이고, 후자로는 [사랑이 그리운 날들에]와 [화려하지 않은 고백] 같은 예가 있을 것이다. [화려하지 않은 고백]은 고백 송이라는 가사가 "언젠가 그대에게 준 눈부신 꽃다발/ 그 빛과 향기도 머지않아 슬프게 시들고" 이런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3. 그러나 동시에 주목해야 할 대목은 오태호의 가사가 파국을 이미 알고 있는 시점에서 쓰여졌음에도 그런 것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혹은 견뎌낼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시절을 항상 언급한다는 점이다. 가령 [화려하지 않은 고백]의 노랫말은 그 자체가 사랑의 힘을 믿었던 시절의 한 조각이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의 첫 구절은 어떤지? "힘겹게 보낸 하루에 / 짧은 입맞춤을 해주던 사랑" 그 뒤에 이어지는 "언젠가 서로가 더 먼 곳을 보며/ 결국에 헤어질 것을 알았지만" 이라는 구절조차 화자가 현재 느끼는 '어려움' 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사랑의 힘을 믿었다는 좋은 반증처럼 느껴질 뿐이다.  

4.  이러한 대조는 단순히 지금 느끼는 고독을  부각시키는 효과만 갖는 것이 아니다. (모든 오태호의 노랫 말 속 화자들이 그렇다 보기는 어렵겠으나, 사실 몇몇은 상당한 나르시스트라 생각하며 때문에 사랑을 떠나보낸다는 사실이 굳이 그들을 고독하게 만든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시간/감정의 대비가 4분여의 짧은 노랫말 속에 섞이면서 일어나는 효과이다. 언어에 의해 분리된 시간은 다시 그 언어가 배열되면서 뒤섞이게 되고, 노래를 듣는 이는 그 헤쳐모여의 혼란스러운 순간을 '바깥'에서 지켜본다. 

5. '바깥'을 어떻게 정의해야할지 나는 모르겠다. 조인성이 공을 받기 좋아하는 지점....?  아무튼 노래를 듣는 이들은 하나 같이 밖에서 안을 바라보는 셈이다. 그리고 혹자는 그곳에서 자신을 본다. 사실 나는 밖에서 안을 보고 있자면 안에서 다시 그 안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보이는.. 소위 '프랙탈' 모양의 구도가 느껴져야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 느낌을 나는 공명이라는 순진한 단어로 표현하곤 했는데, 사실 그보다 더 나은 단어나 풀이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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