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읽은 장정일 소설들 중 가장 가볍고 저열하고, 깊이 없는 인용이 남발된 소설이 아닌가 싶다. 후반에 갑자기 등장하는 나팔과 재즈교는 핀천을 의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 전까지 장정일의 소설들이 텍스트를 거침없이 인용하면서도 그 뒤에 숨어있는 속물스러움을 의식하면서 텍스트를 하나의 '장치'로 못박아버렸다면 이 소설에서는 그 스스로가 몹시 속물스럽게도, 자신이 사용하는 문학적 장치와 레퍼런스에 도취되어버린 듯 하다.
**이 소설에서 "햄버거" 라는 말로 대표되는- 단순히 그 햄버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국 문화는 장정일을 항상 겁먹게 했다. 그의 시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하숙]에서 그랬고, 생각해보면 [실비아 플라스를 읽는 여자]에 등장하는 두 중심 이미지, 험프리 보가트/실비아 플라스 모두 미국인이었지. 그러나 이미지의 과잉에 파묻혀 이 공포는 그닥 선명히 느껴지지 않거나, 억지스러워보이기까지 한다. 험버트를 햄버거라고 써가면서까지 장정일은 이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했을까. *^^*
인용
머릿속에 든 어지러운 생각들을 지우기 위해 한증탕, 냉탕, 열탕을 번갈아 오가는 사이, 때를 미는 퉁퉁한 얼굴의 사내가 그를 자꾸만 쳐다보았는데 그 얼굴은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얼굴이었다. (중략) 초점이 부정확한 멍한 눈동장... 때밀이 사내는 심하게 말을 더듬었으나, 강한 악력으로 그를 붙들어 때밀이 침대로 데려갔다. 그리고 뜨거운 물에 잘 불은 그의 몸을 때수건으로 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그는 때를 밀고 있는 사람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자는...그의 대학 동창생이다...그래...언젠가... 학내의 등록금 인상 반대를 둘러싸고 학생회의 어떤 간부가 3층 건물의 창에서 뛰어내린 적이 있다... 바로... 이 사람... 그때, 이 사람은 무척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리고... 굉장한 달변이었고... 그는 눈물이 왈칵 났다...그때.. 나는 그를 그토록 미워했는데... 자신이 돈 벌어 대학에 다니는 것도 아니면서 등록금 인하 투쟁은 대체 뭐하자는 거냐? (후략) (305) : 박민규의 [고마워, 역시 너구리야]의 마지막이 생각나는 구절.
어디선가 총알이 탕- 날아올 것 같은 무더위 속에서, 아내의 배는 이제 부를대로 불어있었다. 그는 부른 배로 인해 좁아진 안방을 보면서, 이 집에 낯선 남자가 들어와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311)
"삼십대에 부장이 된 것은 현다이의 이명박 다음으로 당신이 두번째야. 아기에게 좋은 선물이 될 거야. 하지만 술을 너무 마셔서는 안돼" (326) ㅋㅋㅋㅋㅋㅋㅋㅋ
그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크신 선생님'의 이마에는 3~4 센티미터 길이의 트럼펫 모양의 상처가 선명히 새겨져있었다 (337) 그리고 그 밑에는 작은 트럼펫 그림이 실제로 그려져있다. 토마스 핀천의 [The Crying of Lot 49]를 향한 레퍼런스. 그리고 나팔 이미지가 다음으로 확장되는 과정도 흥미롭다.
심신이 저무룩하게 밑으로 밑으로 꺼져가는 중에 그는 불알을 덜렁이며 혼음의 축제장을 휘젓고 다니는 '크신 선생님'의 외침을 들었는데, 학창 시절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것은 요한 계시록 제 8장과 9장의 말이 분명했다. "일곱 나팔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예비하더라. 첫번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후략)"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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