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ugust 10, 2013

최윤-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소설집)

*한문장 한문장, 조심스레 도려내어서 간직하고 싶은 소설이 있다.

** 최윤의 소설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그의 반듯하고 흐트러짐 없는 문장 앞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가벼이 눈 둘 곳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야말로 자리에 꼿꼿이 앉아 경전을 낭독하듯, 최윤의 소설은 그리 읽어야 했다.

나는 지금 식탁에 앉아 조심스럽게 그의 문장들을 조금이나마 따라 적어보려 한다. 소설의 전체가 아니라, 이렇게 조각난 글 밖에 옮길 수 없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 최윤에게 문학은 무엇일까. 그의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냄으로서 존재했었으나 이제는 잊혀지고 조롱받는 것들을 추억하려 하는 것일까.

 그는 계속 이념을 언급하고, 지하 조직들을 언급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것들은 구체적으로 이야기되지 않는다. 다만 읽는 이들은 모두 그것이 존재한다는/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혹자는 심지어 그것의 정체를 감히 넘겨 짚어보기도 할 것이다: [회색 눈사람] 속 '안'의 존재를 우리가 의심하지 않듯이, [저기 소리없이 한점...] 속 '우리'의 모습을 우리가 알아보듯이. 한편 최윤의 소설 속 인물들은 목적(이념/조직)을 가지고 있었으나 실패했으며, 그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만들어나가기 보다, 자신들의 목적없는 존재를 받아들인다.

 독자와 소설 속 인물 사이에서- 혹은 의미를 거부하려는 자와 의미를 부여하려는 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기묘한 긴장. 그것을 최윤은 [벙어리 창]이라 이름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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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이십 년 전의 그 시기가 조명 속의 무대처럼 환하게 떠올랐다. 그 시기를 연상할 때면 내 머릿 속은 온통 청록색으로 뒤덮인 어두운 구도가 잡힌다. 그러나 어두운 구도의 한쪽에 처진 창문의 저쪽에서 새어들어오는 따뜻한 빛이 있는 것도 같다. 그것은 혼란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픔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픔이었다. 그것이 미완성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삶의 단계에 정말 완성이라는 것은 있기라도 한 것인가. (회색 눈사람, 33)

우리- 그렇다, 지금쯤은 우리라고 불러도 좋겠다- 는 매일 매일 저녁을 알 수 없는 열기에 젖어 그 퇴락한 인쇄소에 갇혀서 보냈다 (회색 눈사람, 33)

격렬했던 심장의 고동이 잦아들고 서서히 저 깊은 곳에서부터 이상한 감각이 약한 경련을 동반하면서 밀려올라왔다. 맨 먼저 그것은 오랫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도저히 수리될 수 없을 것 같은 후회의 감정이었다. 그것은 어떤 구체적인 대상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후회의 자리에 서서히 들어앉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안도감이었다 (회색 눈사람, 35)

그 시절 우리-왜 나는 우리라는 단어 앞에서 여전히 수줍고 불편함을 겪는가- 는 모두 넷이었다. 물론 우리는 처음부터 우리가 아니었다. 그들을 알았던 많은 사람들은 나의 이 우리라는 단어의 사용에 반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감히, 그들의 견해와는 무관하게 이 단어를 쓰기로 한다.  (회색 눈사람, 35)

어떤 구체적인 소속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어디서 왔는지, 가족이 있는지... 마치 공중의 전선에 매달려있다가 어느 날 앞에 나타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가 사라져버리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겉모양과는 달리 안의 소개는 구체적이었다. (회색 눈사람, 37)

그렇지만 나는 말을 계속 할 수가 없었다. 공연히 속이 꽉 막혀왔기 때문이었다. 한밤중에 여행을 할 때 당신은 불빛이 있는 쪽으로 걷지 않나요. 내가 그 불빛을 당신의 인소소로 정했다 해서 내 여행이 죄스러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가끔 당신에게는 하찮은 것이 위로가 될 때는 없습니까.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의 목소리나 어떤 분위기 같은 것 말입니다. 내가 당신의 목소리와 당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선망으로 바라보면서 약간의 안도와 위로를 얻었다고 해서 당신에게 누가 된 것이 무엇입니가. 나는 침을 꿀꺽 삼키는 것으로 안에게는 이해되지 않을 이 말드을 삼켜버렸다. 그는 여전히 나의 답변을 기다리는 기색이었다. (회색 눈사람, 44)

마치 내가 한번 지나침으로서 그곳이 조금은 나의 삶의 일부가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나 이 도시는 아무리 만지고 냄새 맡고 열망해보아야 어느 거리, 어느 사람에게도 나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여전히 내가 처음에 기차에서 내렸던 바로 그 순간처럼 생소한 차가움으로 나를 거부하고, 나는 이 지상에서 여전히 유령처럼 적을 둔 곳 없이 부유할 뿐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회색 눈사람, 46)

우리가 기획하고 있던 책들은 물론이요 다른 단체들을 위한 인쇄물을 끝내지도 않은 채 일이 터지고 만 것을 나는 신문을 보고 알았다. 연행된 사람들의 이름이 서넛 실려 있었지만 교정으로 낯이 익은 한 이름만 제외하고는 생소한 이름들이었다. 그들의 활동은 이런 종류의 기사가 늘 그렇듯이 신문의 눈에 띄지 않는 한구석에 서너 줄로 요약되어 있었다. 그것은 안을 비롯한 우리 인쇄 담당이 안전하다는 것을 보장해주기에는 불충분했다. 만약 내가 알고 있는 그들의 이름이 본명이라면, 어떻든 그들의 이름은 신문에 나지 않았다. (회색 눈사람, 60)

김희진이 도착하던 날, 그녀의 피곤에 지쳐 눈감긴 얼굴을 쳐다보면서 나는 내가 이미 오래 전부터, 나도 모르게 그 성격을 규정하기 어려운 희망이란 것에 감염되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은 어떤 형태로든 일생동안 나를 지배하리라는 것도. 나는 막연한 희망에 대한 막무가내의 기대로 김희진을 돌보았다. (회색 눈사람, 67)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안의 검거에 대한 제법 큰 기사를 읽었고 뒤늦게 나의 익명의 동료들의 활동에 대한 왜곡되고 과장된 해석의 기사를 읽었다 (회색 눈사람, 71)

그렇지만 나는 그의 저서가 언젠가 빛을 볼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노교수의 방대한 사고는 매주 계획이 확대되기만 할 뿐이기 때문이다. (회색 눈사람, 73)

그러나 아주 어려서부터 나는 어머니가 해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며, 아버지의 월북 이후 어머니를 비롯해 집안 식구들이 겪은 쓰라리고 모진 고생담을 마치 내가 스스로 겪은 일인 것처럼 착각하는 버릇이 붙어있었다. 이 막연한 이야기들이 내가 주변을 사릴 만큼 컸을 때 드디어 생생한 현실이 더욱 깊숙이 뇌 속에 자리를 잡아버린 후부터, 나는 이 일종의 대리 경험의 무게에 눌려,  너무 일찍 늙어버린 느낌이었다. (아버지 감시, 112)

이런 종류의 아버지는 숨기면 숨길 수록 더욱 일상의 갈피에 끼어들게 마련이다. 내가 비관적일 때  나는 아버지를 모방하려 했고, 낙관적일 때는 열렬히 아버지를 거부했다. (아버지 감시, 112)

어머니가 안계신 지금 아버지와 나 사이엔ㄴ 오히려 없느니만 못한 처치곤란한 거리만 생겨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국제도시로 탈바꿈한 서울에 대해, 180도로 변신한 한국에 대해서, 외국 시장을 범람하는 메이드 인 코리아의 상품에 대해 주절주절 상식적인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고 한번 시작하자 어쩐 일인지 멈추기가 힘들었다. 아버지는 내가 조성한 그 거짓된 상황을 제자리로 잡아놓기는커녕, 띄엄띄엄 여행담이라도 들려주시듯이 연변이나 북경 등지의 지방의 풍습을 간단하게 묘사하셨다. 서로의 심경을 건드리는 부분을 교묘히 피한, 나로서는 참기 힘든 대화의 상황이었다. (아버지 감시, 117)

연구소를 아예 쉬고 비행기 착륙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나간 바람에 기다림에 지칠 때 쯤 해서, 이윽고 여행객들 틈에서 구식 양복에 군청색 솜외투를 걸치고 귀밑머리를 바짝 깎아 더욱 뾰족해 보이는 얼굴을 꼿꼿이 쳐들고 걸어나오는 노인을 발견했을 때 나는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국제 공항을 채운 수많은 환영객의 시선도 잊고 나는 그때 당장에는 난생 처음 보다시피 한 노인이 된 아버지의 품으로 달려가 그 자리에서 한바탕 대성통곡을 했다. 뿌리 깊은 통한과 원망이 뒤섞인 통곡임에도 틀림없었으나,  그것은 아버지를  되찾은데서 오는 감격이나 본능적인 부자지정에서 우러난 것이라기보다는, 이 년 이상이나 질질 끌어온 아버지의 여행 초청 문제가 거의 해결되었을 무렵, 그토록 바라던 남편과의 재회를 눈앞에 두고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서러움이 복받쳐 올라온 까닭이었다. (아버지 감시, 119)

아버지의 품안에서 아무리 '어머니이'를 외쳐대고 얼굴을 아무리 비벼대보아야 척 와붙지 않는 껄껄하고 스산한 감촉이었다. (아버지 감시, 119)

"모든 게 많이 생경스러워서 이렇게 쳐다본다. 눈을 요리조리 치켜들고 상대편을 쳐다보는 아나운서도 우습고, 빙글빙글 웃는 저 젊은 혁명가도 우습고, 불란서말은 또 왜 요렇게 경망스럽게 빠르냐?" 아버지는 정감어린 목소리로, 정말 재미있다는 듯이 미소진 얼굴을 내게로 돌리고 말씀하셨다. (아버지 감시, 122)

"쳇, 세상에도 지독하던 루마니아가 저렇게 쉽사리 무너질 줄 누가 알아써요. 루마니아야 독재자가 앉아서 그랬다지만 이건 동구의 어느 나라 하나 온전히 버티는 나라가 있나 보세요. 이건 뭐 거대한 폭음을 내면서 무너지는 게 아니라 그저 기운없이 풀썩 썩은 둥지 주저앉는 하는 거예요" 나는 얘기를 하면서 아버지의 표정을 살폈다. 여전히 무엇이 우스운지 미소를 띄고 화면을 주시하는 아버지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는 야박하게 한마디 더 덧붙였다. "아버지는 동구의 공산주의가 저렇게 무너져내리는 게 아주 재미있으신가 보지요?"
그러나 내심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렇게 점잖은 말이 아니라 "아니 기껏 저렇게 무너질 것 때문에 일생을 폭삭 망치셨단 말예요" 같은 항의조거나 "도대체 아버지는 어느 쪽입니까? 설마하니 아직도 저쪽은 아니겠죠?" 같은 차마 발설할 수 없는 의심조였다. 아버지의 옆얼굴이 잠시 굳어지는가 했더니 여전히 예의 미소가 퍼지면서 천천히 말했다. "재미있냐고? 그거야 난생 처음 일어나는 일이니, 그렇게 말할 수도 있갰구나. 몸이 커지면 아무렴 알맞는 옷을 갈아입어야지." "....?" 나를 멍청하게 만드는 이런 식의 대답은 정말 딱 질색이었다. 당신과는 조금도 상관이 없는 남의 집 불보듯 하는 아버지의 태도는 급기야 내 속에 불을 지르고 말았다. (아버지 감시, 123)

"한번도 이 애비를 본 적이 없으며, 네 말마따나 망령으로만 접해온 너로서는 뒤늦게 나타난 애비에 대해 두루두루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생각건대 두가지 생각의 가락 사이에서 주체할 수가 없겠지. 하나는 나에 대한 원망으로 내가 네 앞에서 그리고 이제는 이 세상에 없다만 네 어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한번만이라도 용서를 빌면서 울부짖어주었으면 하는 것이겠고, 다른 하나는 이왕 모든 것 떨치고 떠난 바에야, 세상이 우러러보는 떠들썩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되어 너히들 머릿속 한구석에 살고 있는 그 망령의 한 자락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더라면 하는 바람 아니겠느냐" (아버지 감시, 134)

"그렇다고 늙은이가 주책없이, 죽기 전에 나 개인의 모양을 바로잡으려고 이 먼 여행을 계획했다고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바로잡을 모양새도 자랑할 만한 거리도 없다. 네 애비라는 사람은 그저 이십여 년 이상 농사에 매달린 야인일 뿐이고, 내 보잘것없는 생애에 많은 우회를 거친 다음에 어렵게 이른 이 자리가 흡족할 뿐이다. 그리고 바로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너희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아버지 감시, 136)

나는 나 자신을 설득이라도 하듯이 지금까지 그런대로 나를 안심시킨 여러 가지 사실들을 다시 떠올렸다.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벌써 오래 전에, 그것도 죽음을 각오하고 나의 어린 '동생'들까지 이끌고 북한에서 중국으로 이주를 감행한 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그 전향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늘 그렇듯이 이 사실을 상기해보아야 안심은 잠시일 뿐 또 다른 사실이 재빨리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대부분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아버지는 한번도 시원하게 그 도망쳐온 이북에 대해 이렇다 할 비판을 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도저히 그에 대해 길게 언급한 적이 없었거니와, 나 또한 실상 한번도 진지한 호기심을 가지고 북쪽의 상황을 물어본 적조차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대한민국에서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북쪽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있지 안은가. 게다가 우리 가족처럼 델 만큼 덴 사람들에게 있어서랴. 나는 아버지가 도착하신 바로 다음날 저녁 식사중에 북한에 대한 나의 지식을 일부러 열을 올려가며 아버지 앞에서 쏟아놓던 일을 상기했다. 하기는 내가  아버지의 입장에 있었더라도 그토록 확실한 지식 앞에서는 감히 반론은 커녕 조그만치의 부언조차 삼갔을 것이다. (아버지 감시, 137)

우리 가족이 거처를 옮길 때마다 냉랭한 불신과 위협적인 시선으로 집안을 한바퀴 훑어보고 가던 소위 담당 구역 형사들의 비슷비슷한 얼굴들이 그것 보라는 듯 의기양양한 자태를 지으면서 눈알을 스쳐 지나갔다. 그 얼굴들의 대열 맨 끝에서 마침내 탈을 벗은 진정한 망령의 얼굴이 슬픈 표정을 하고 멈추어 섰다. 불행히도 그 딱한 취조자의 얼굴은 다름아닌 나의 얼굴이었다. (아버지 감시, 141)

아버지는 보시던 법국 안내서의 한귀퉁이를 펼치셨다. 중국어로 씌어진 안내서의 내용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한 옆에 그려진 지도와 묘지라는 한자로 보아 페르 라 셰즈 묘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하고많은 명소 중에 왜 하필 공동묘지부터..." 그러나 나는 곧 입을 다물어버렸다. 아버지가 그곳을 보고자하는 의도가 막연히 잡혔기 때문이었다 (중략) "이 안을 다 둘러보시려면 서너 시간이 걸릴 텐데 다 보시겠어요? 아니면..." 온갖 멋을 부려 조각 장식을 한 서구식 무덤들보다는 이 묘지의 크기에 조금 당황하신 듯 잠시 멈춰 첩첩이 무덤들인 사방을 휘돌아보시는 아버지의 얼굴이 벌써 추위에 반쯤 얼어있었다. "다 보긴... 가로질러 곧장 그리로 가자." "그리라니요?" 나는 너무 당연하다는 투로 말씀하시는 데 약간 반발을 하며 일부러 되물었다. "녀석, 딴청을 하기는... 나 같은 사람이 여기를 오자고 했을 때 그게 어디일 것 같으냐". 아버지는 조금도 거리낌 없이 말씀하셨다. 이 '나 같은 사람'이란 말씀이 강한 충격과 함께 여러번 귓속을 울렸다. 나는 말없이 정문에서부터 동쪽 끄트머리에 위치하고 있는 '코뮌 병사들의 벽'을 향해서 걸었다. 공산주의권의 여행자들이 파리에서 빠트리지 않고 방문하는 상징적인 성소처럼 되어버린 곳이었다.  (아버지 감시, 144)

불온한 음을 녹음했다는 이유로 원하지도 않은 입대 날짜를 갑작스럽게 통고받고 난 후, 별다른 진전없이 이미 녹음해놓은 몇 개의 테이프를 만지작거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나는 아주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게 됐다. (벙어리 창, 147)

내가 벙어리로 단정한 바로 그 여인이, 갑자기,  나로서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고음으로 완벽하게 연습한 듯한 소리의 연속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아름답다고 말하는 선율이나 노랫가락은 아니었다. 높고 가늘지만, 순간적으로나마 거리의 소음을 말살해버리는... 창자 저 깊숙한 데서 나왔거나 아니면 심연의 밑바닥에서 끌어올린 소리,  마치 신화 속의 괴물이 때와 장소를 착각하고 내 앞의 공중 전화에 나타나 포효라도 한 것처럼. 나는 당황한 나머지 허리에 차고 있는 소형 녹음기의  단추를 누르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벙어리 창,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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