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feel it coming in the air tonight, oh lord Ive been waiting for this moment, all my life, oh lord Can you feel it coming in the air tonight, oh lord, oh lord
Well, if you told me you were drowning I would not lend a hand I've seen your face before my friend But I dont know if you know who I am Well, I was there and I saw what you did I saw it with my own two eyes So you can wipe off the grin, I know where youve been Its all been a pack of lies
And I can feel it coming in the air tonight, oh lord Ive been waiting for this moment for all my life, oh lord I can feel it in the air tonight, oh lord, oh lord And Ive been waiting for this moment all my life, oh lord, oh lord
Well I remember, I remember dont worry How could I ever forget, its the first time, the last time we ever met But I know the reason why you keep your silence up, no you dont fool me The hurt doesnt show; but the pain still grows Its no stranger to you or me
And I can feel it coming in the air tonight, oh lord..
필 콜린스 1집 [Face Value]- 앨범 제목은 물론이고 커버와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서도 탈모가 벌써 상당히 진전된 필 콜린스의 두상을 이상하리만치 강조하고 있다- 수록곡.
이 곡에는 또한 희한한 도시 전설이 있는데 그 전설은 이미 에미넴이 Stan을 통해 잘 요약해놓았으니 인용하자면..
"You know the song by Phil Collins [In the Air Tonight]
About that guy who could've saved that other guy from drowning
but didn't, then Phil saw it all, then at a show he found him"
아마 기괴한 뮤직비디오 영상 (필 콜린스의 얼굴이 물에 뜬 것처럼 나타났다가 흐려지기를 반복한다)과 아리송한 가사, 마치 고백을 요구하고 요구받는 듯한 'oh Lord'의 반복, 그리고 음울한 분위기의 곡이 함께 이런 전설을 만들어낸 것이겠지. 필 콜린스는 사실 무근의 이야기라고 부인한 바 있다. 하지만 본인도 이 곡이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는 것이 함정.. (당시의 언론이나 호사가들은 필 콜린스 자신의 실패한 결혼 생활에 대한 암시일 것이라 추정했다)
그가 몸 담았고 처음 명성을 얻게 된 Genesis (드럼, 보컬, 그리고 Peter Gabriel을 밀어내고 밴드의 음악적 브레인으로 자리잡게 된다)는 아트록 밴드로 널리 알려졌지만 필 콜린스는 팝/알앤비에 강점을 보이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 곡 외에 국내에서 잘 알려진 그의 노래로는 휘성과박정현이 자동차 선전에서 부른 Against All Odds일텐데, 당시 필 콜린스가 휘성의 보컬을 극찬하면서 '이런 느낌을 내고 싶었다' 고 평했다는 말이 전해지기도 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미국의) 알앤비에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모방하기도 주저하지 않았던 그의 성향이 잘 드러나는 이야기가 아닐지.
Against All Odds는 Rachel Ward가 주연한 멜로 영화의 주제가로 쓰이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위 영상의 썸 네일은 영화 속의 일부로, 마야 유적으로 유명한 치첸 이차가 배경.
그룹 ABBA 멤버인 Frida의 [I Know There's Something Going On].
필 콜린스가 프로듀싱했으며 둥둥둥둥 때리는 드럼소리가 특징.
이 곡이나 [In the Air Tonight]처럼 콜린스 본인이 프로듀싱한 곡은 물론이고 [Against All Odds] 같이 그가 직접 프로듀싱하지는 않았으나 대중들에게 '그의 곡' 으로 인식된 작품들을 통해 이 드럼 소리는 필 콜린스의 시그니쳐 사운드로 자리잡았다.
(LA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는 Kobe Bryant겠지만 그는 이탈리아에서 유년을 보내고 필라델피아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어릴 적부터 L.A. Lakers의 열성 팬이었다는 걸 제외하면 코비는 사실 LA에 별다른 연고 자체가 없다.)
폴 피어스는 L.A. 카운티 내 소도시인 잉글우드에서 자라났다. 캘리포니아 러브에서 투팍이 외치는 그 Inglewood가 맞다.
이 광고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폴 피어스를 비롯해 몇몇 유명 선수들이 고향을 방문해 어린 시절의 그 장소에서 경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광고였는데.... 그렇지 않아도 '동네 아저씨가 농구하는 것 같다'는 평을 듣곤 하던 폴 피어스였기에 더욱 이런 모습이 인상적으로 남았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폴 피어스는 오늘날 보스턴 셀틱스의 대표적인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지난 시즌 팀을 떠나야했지만) NBA에 처음 드래프트된 이래 10년 여를 한 팀에서만 뛰어온 결과이다. 보스턴 셀틱스가 피어스의 고향에 연고를 둔 LA Lakers와 오랜 라이벌 관계라는 것, 그리고 정작 동부에서 자라난 코비가 오늘날 Lakers에서 피어스 이상의 위상을 지닌 존재라는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는 한층 더 깊어진다. 피어스도 이제는 누구 말마따나 보스턴 시민이 다 된 것 같다. 지난 해의 슈퍼볼에서 뉴 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열렬히 응원하던 것을 생각하면.
무엇보다 폴 피어스는 레이커스 팬들의 머릿 속에 쉽게 씻겨지지 않을 상처를 남긴 바 있다. 레이커스에게도, 셀틱스에게도 결코 끝나지 않을 듯하던 '침체기' 끝에 2008 년 두 팀은 NBA 파이널까지 진출했고, 그곳에서 맞대결했다. 저 유명한 매직 존슨-래리 버든의 라이벌리 이래, 그러니까 80년대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보스턴에서 벌어진 첫 경기는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동료 선수 케빈 가넷과 부딪힌 폴이 무릎을 잡고 바닥에 쓰러진 것은 그 때였다.
누구지? 백예림? 아무튼 노래를 잘한다는 어떤 한국 소녀 가수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그녀가 커버한 노래를 듣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다던데. 그게 Chrisette Michele 이었다고. 문득 Epiphany 앨범이 듣고 싶어졌다.
Keyshia Cole도 그렇고 아무튼 그런 팝 알앤비..라고 해야하나. 그런 게 참 듣기 좋다. 오래된 소울들과는 또 다른 매력. 그렇다고 90년대 '중창단'의 한없이 끈적거리는 느낌과는 또 다르게, 적당히 둔탁한 비트와 감겨드는 듯한 목소리. Cole의 데뷔 앨범과 Michele의 [Epiphany]는 정말 잘 만든 앨범들이라 생각한다. 아마 소위 '흑인 음악'의 범주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스타일이 아닐까. 몇년 지나지 않아 이제는 찾아보기도 은근히 힘든 스타일이 되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를 "농구 천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반은 농담 삼아 그런 것이었지만, 나머지 반은-
랜스 스티븐슨. 1990년생. 인디애나 페이서스 소속의 가드. 장기는 발군의 순발력과 좋은 체격을 이용한 돌파. 단점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슈팅, 그리고
성질. 슛을 성공시키고 엉덩이를 야비하게 흔들어댄다거나 공을 상대 얼굴에 들이밀며 장난질을 칠 때 보면 그는 영략없는 정글의 중간 포식자- 이를테면 살쾡이- 같다. 하지만 48분이라는 시간은 순간적인 열정과 재기발랄함보다는 참을성과 인내를 요구한다. 패스를 한번 할 때도 정석을 따르기보다는 등 뒤로, 노-룩 패스를 던지기 좋아하는 랜스에게 그런 덕목을 찾아보긴 어렵다. 하긴 그에게 그러한 신중함이 있었더라면-
아마 지금쯤 다른 곳에 있었겠지. 랜스가 인디애나 페이서스에서 뛸 수 있었던 데에는 예상치 못한 일련의 사건들이 크게 개입했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랜스의 앞날은 창창해보였다. 고교 최고의 선수였고, 대학에 들어가도 1년 뒤 프로 진출을 선언하는 일이 빈번한 미국 농구계였기에 랜스 역시 곧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NBA에 입성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그는 성폭행 (sexual assault) 혐의로 기소된다. 그리고 대학에서의 평범한 성적. 1학년을 마치고 랜스는 프로 진출을 선언했고 드래프트되지만 끝자락에서 만족해야했다. 전문가들은 그의 터지기 쉬운 성질과 기소 이력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이 선수가 훨씬 더 높은 위치에서 드래프트가 되리라 예상했던 인디애나는 주저없이 랜스를 선택했다. 60명의 선수들 중 40위.
랜스가 농구 팬들의 관심을 새로이 끌게 된 것 역시 경기와는 그닥 무관한 사건을 통해서였다. 아니, 무관하지는 않다. 분명 그 사건은 경기장 안에서 일어났으니까.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마이애미 히트가 플레이오프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 전 해 마이애미 히트는 소위 '빅 3'를 결성하면서 화제가 되었으나 팀은 파이널 (결승전)에서 패배하면서 2위에 그쳤고, 때문에 히트는 물론 그 중심에 있던 르브론 제임스조차 체면이 말이 아니던 상태였다. 특히 르브론 제임스는 파이널에서의 부진으로 인해 'choker'(겁쟁이)라는 평판까지 얻게 되었다. 페이서스와의 경기에서 파울을 당한 르브론 제임스가 자유투를 던지려 할 때, 코트 바깥에 서있던 인디애나 선수들은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그 중에서 랜스 스티븐스가 유독 심했다. 그는 자신의 양 손을 목에 대고 조르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목이 졸리다 (choke)는 단어를 비틀어서 르브론을 비웃은 것이다. 이 조롱은 곧 히트와 페이서스 사이의 갈등으로 번졌다. 경기 다음 날 히트의 최고참인 주완 하워드는 스티븐스에게 다가가서 그의 태도에 대해 훈계를 했다. 스티븐스는 해볼테면 해보라는 태도를 취했고 결국 페이서스 선수들이 달려와서 그 둘을 떼어놓아야했다. 그리고 다음 경기 중 히트의 선수 덱스터 핏맨은 스티븐스를 말 그대로 메다꽂았다. 그것을 우연히 발생한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티븐스는 복수를 당한 것이다.
당시 NBA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누군가가 물었던 것을 기억한다. "저 선수는 누군데 저렇게 까부나요?" 누군가가 대답했다. "가비지 멤버예요. 자기나 잘할 것이지." 그리고 거짓말 같은 일이지만- 랜스는 그 플레이오프 이후 전혀 다른 선수로 거듭난다.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제너럴 매니저로서, 랜스의 드래프트와 성장에 큰 영향을 끼쳤던 래리 버드는 언젠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랜스는 재능 덩어리이다. 가장 큰 문제는 그 재능을 어떻게 다듬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버드는 랜스의 스텝업을 '당연하게' 여긴 몇 안되는 내부인 중 하나였다.
이 시즌 랜스와 함께 새로운 스타로 등극한 또다른 선수가 페이서스에 있었다. 폴 조지였다. 폴 조지는 랜스에 비하면 훨씬 많은 기대를 받으며 데뷔했지만 (10픽) 다른 스타 선수들이 데뷔 전부터 받던 기대에 비하면 둘 다 언더독이었다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둘은 성향에 있어 전혀 달랐다. 랜스가 재능 덩어리였다면 폴 조지는 꾸준히 노력을 하는 타입이었고, 랜스가 특유의 투지와 재기로 수비를 뚫는 창 (Lance)같았다면 조지는 인내를 가지고 꾸준히 경기를 운영하는 존재였다.
사람들은 그 아이가 말을 할 때면,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우르르 몰려 보석을 주워가곤 했지. 그 아이의 입천장과 혀와 잇몸이 쏟아져 나오는 돌덩이들의 모서리에 긁혀 생채기나고, 피가 흐르고, 짓무르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말야. 하지만 그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한명 쯤은 있지 않았을까. 그 아이가 말을 할 때면 와장창 쏟아져 나오는 보석 소리,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의 발 소리로 항상 소란스러웠을테지. 하지만 거기에 가려 쉬이 들리지 않는 작고 여린 헐떡거림과 어쩔 수 없이 새어나오는 고통의 흔적들을 알아채는 사람도 하나 쯤 있지 않았을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들 조금씩 미쳐있었다. 나는 그들이 남기는 미세한 광기의 흔적을 보면서- 조금씩 마모되어가는 이성을 보면서- 두려움과 설레임에 몸을 떨곤 했다. 그 광기를 내가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사랑했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사랑한 것은 나였네.
그래서 어두운 길거리를 걸으며 어느날, 나는 이 노래를 혼자 불렀지. 나의 품 속으로, 오 주여. 나의 품 속으로, 오 주여. 하염없이 반복하면서 나는 어둠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내가 내딛는 어둠의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속이 곧 내 안의 공허함이었네. 내가 나아갈 수록 나는 사실 더 깊숙이 빠져들고 있었네. 그래서 이 여행은 끝날 줄을 모르고.
새벽에 보게 된 이 만화가 나를 뜬금없이 사로잡았다. 나 역시 김닭과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없고, 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더 와닿았던 걸까. 나 역시 그녀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기억하고 싶지 않고,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나 할머니에 대해선- 너무 미안해서 그런 걸까. 너무 오랫동안 할머니를 잊고 지냈던 것 같다. 6년이라는 세월이 잊게 만든 것이 아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잊고 싶었다는 말로, 변명을 해온 내 자신이 스스로 너무 쉽게 잊어버린 것이다. 김닭이 "할머니의 기억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녀의 마음은 슬픔과 소재에 대한 욕심 사이에서 찢어져있던 것처럼- 결코 같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을 함께 유지시키기 위해 우리는 변명을 만들었다.
보이즈 투맨의 On Bended Knees 를 들으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Can somebody tell me how to get things back the way they used to be"
정외과 건물을 나오는데 동양계 미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주 잠깐 동안 보았을 뿐인데 몸이 저릿해지는 것 같은 그런 미인. 나를 대학원생으로 착각했는지 그 쪽에서 손을 살짝 흔들어보였다. 나는 말 없이 그녀를 지나쳤다. 돌아오는 길은 학교에서 대청소를 하느라 내놓은 종이 상자 냄새로 가득 차있었다.
내 자신이 품고 있는 냉소가 사실은 '실패'- 이미 예정되었으며, 언젠가 닥쳐올 것이기에 비극적이기보다는 차라리 음울하게 느껴지는- 에 대한 반사작용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전의 일이었다. 반듯하고 화려하고, 잘 자리잡힌 삶들 앞에서 냉소는 더이상 내 자신에게조차 매력적인 대안이 아니었다. 많은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과, 그 욕심 위에 앉아 비웃음을 던지려는 욕망 사이에서 나는 항상 갈 길을 잃었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차라리 갈 길이 너무나도 빤히 보이기에 나오는 괴로움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혼란과 달랐다.
하나의 구원을 생각하고, 오직 그것만을 생각한다. 하늘에서 누군가 나에게 손을 뻗어 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차라리 [파이트 클럽]의 마지막 장면 같은 것이다. 빌딩이 무너지고, 나의 세계가 무너지는데, 그 와중에도 마주보고 농담하면서 웃어 보일 수 있는 그런 네가 있었으면 좋겠다.
잠시- 그 씬을 떠올려보자. Marla는 에드워드 노튼의 창조물이기에 무너지는 그의 세계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에드워드 노튼은 살아날 수 있을까. 마치 꿈이었다는 듯이,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나면 깨어나게 될까. 아니면 노튼 역시 타일러나 Marla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환상 속에서 죽게 되는 것일지. 그리고 그 순간에 영화는 끝난다. 노튼의 정체가 무엇이었든, 그는 실존하지 않습니다, 관객님들. (그러나 정말로 그러한가*)
나의 실패를 비웃을 가공의 관객들을 상정한다. 하루에 몇번씩, 강박적으로 "나는 실패했다"는 여섯글자가 떠오르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차라리 어느 날 내가 한 정신병자의 머릿 속에서 탄생된 환상일 뿐이며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내가 사는 세계의 모든 것이 무너진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이대로 죽고 싶지도 않다. 난 살고 싶다.
이게 끝이라면, 이 끝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확신을 갖고 싶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는 살고 싶다.
그리고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나는 다시 하루를 소비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요즘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것이 나의 '생존 방식'일까? 거기에는 답을 할 수 없지만.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이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프라이멀 피어]에서 "존재"에 대해 굉장히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노튼은 [파이트 클럽]에서도 다시 비슷한 주제의, 그러나 조금은 변주된, 질문을 제시하게 된다.
***다시 엔딩을 찾아보니 기억과 다른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웃어보이는 일 따위는 없고, Marla는 눈 앞에서 빌딩이 무너지는 데에 경악해서 옛 미모는 어디갔는지 종잡을 길이 없는 에드워드 노튼의 얼굴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손은 또 잡고 있네.
원래 노래방 이런 거 별로 간 적이 없어서 내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내 자신의 목소리를-이현우처럼- 잡티 별로 없이 깨끗한 편이라 생각해왔고 그래서 커트 코베인이나 (얘가 노래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에디 베더나 (제법 잘함) 브루스 스프링스틴 (매우 잘함) 같은 목소리를 갖길 내심 바라왔다.... 그런데 한국 가수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보컬은 또 이승열/백현진/하림이니까 팝 들을 때와 가요 들을 때 선망하는 목소리가 달라지는 듯... 아무튼 이현우 싫어... -_- 실장님 실장님... 그래도 상당히 괜찮은 가수이긴 하다. 이른바 "그랜드 슬램"과 '두 개의 히트곡' ([꿈]과 이 곡..) 에 가려져서 그렇지 ([꿈]에 상대적으로 가린)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 해]]나 후회] 같은 곡들도 좋음. 그리고 억지로 목소리를 남자답게 내려는 듯 소절마다 '스어~' 하면서 끝내는 스타일도 뭐.... *이거 페북에서 붙여넣기 함..
영화 [High Fidelity]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 평생을 함께 하기로 다짐한 사람을 위해 믹스테입을 만들면서 존 쿠색은 이 노래를 듣는다. 하지만 [High Fidelity]의 매력은 단순히 두 연인이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관계를 잘 그려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현대인들 밑에 깔려있는 나르시즘과 몇가지 취향, 혹은 그것의 소비로 요약될 수 있으리만치 가벼워진 '존재'에 대해서도 이 영화는-그리고 닉 혼비의 원작은- 여러가지를 이야기한다. 그래, 내가 어줍잖게 요약을 하느니, 그냥 그 장면을 보는 편이 나을 듯 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필립을 만나서 식사를 같이 하고, 잠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 바에 갔다. 그곳에서 다시 다른 친구들을 만나고, 샌프란시스코로 여행을 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돌아오는 길에, 취해서 계속 떠들었다. 최근에 본 영화- 나는 [Once Upon a Time in West]를 보았다- 와 음악에 대해서, 가족 안의 사소한 트리비아에 대해서... 그래서, 여행을 가게 될지, 그렇게 된다면-운전을 못하는- 나는 무엇을 하게 될지,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은 없었다. 그저 우리는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했고, 거기에서 암묵적인 확신을 느끼며 서로 헤어진 셈이다. 그것을 우리는 관계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