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신이 품고 있는 냉소가 사실은 '실패'- 이미 예정되었으며, 언젠가 닥쳐올 것이기에 비극적이기보다는 차라리 음울하게 느껴지는- 에 대한 반사작용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전의 일이었다. 반듯하고 화려하고, 잘 자리잡힌 삶들 앞에서 냉소는 더이상 내 자신에게조차 매력적인 대안이 아니었다. 많은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과, 그 욕심 위에 앉아 비웃음을 던지려는 욕망 사이에서 나는 항상 갈 길을 잃었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차라리 갈 길이 너무나도 빤히 보이기에 나오는 괴로움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혼란과 달랐다.
하나의 구원을 생각하고, 오직 그것만을 생각한다. 하늘에서 누군가 나에게 손을 뻗어 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차라리 [파이트 클럽]의 마지막 장면 같은 것이다. 빌딩이 무너지고, 나의 세계가 무너지는데, 그 와중에도 마주보고 농담하면서 웃어 보일 수 있는 그런 네가 있었으면 좋겠다.
잠시- 그 씬을 떠올려보자. Marla는 에드워드 노튼의 창조물이기에 무너지는 그의 세계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에드워드 노튼은 살아날 수 있을까. 마치 꿈이었다는 듯이,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나면 깨어나게 될까. 아니면 노튼 역시 타일러나 Marla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환상 속에서 죽게 되는 것일지. 그리고 그 순간에 영화는 끝난다. 노튼의 정체가 무엇이었든, 그는 실존하지 않습니다, 관객님들. (그러나 정말로 그러한가*)
나의 실패를 비웃을 가공의 관객들을 상정한다. 하루에 몇번씩, 강박적으로 "나는 실패했다"는 여섯글자가 떠오르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차라리 어느 날 내가 한 정신병자의 머릿 속에서 탄생된 환상일 뿐이며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내가 사는 세계의 모든 것이 무너진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이대로 죽고 싶지도 않다. 난 살고 싶다.
이게 끝이라면, 이 끝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확신을 갖고 싶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는 살고 싶다.
그리고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나는 다시 하루를 소비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요즘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것이 나의 '생존 방식'일까? 거기에는 답을 할 수 없지만.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이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프라이멀 피어]에서 "존재"에 대해 굉장히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노튼은 [파이트 클럽]에서도 다시 비슷한 주제의, 그러나 조금은 변주된, 질문을 제시하게 된다.
***다시 엔딩을 찾아보니 기억과 다른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웃어보이는 일 따위는 없고, Marla는 눈 앞에서 빌딩이 무너지는 데에 경악해서 옛 미모는 어디갔는지 종잡을 길이 없는 에드워드 노튼의 얼굴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손은 또 잡고 있네.
[프라이멀 피어]에서의 노튼..
미모 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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