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를 "농구 천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반은 농담 삼아 그런 것이었지만, 나머지 반은-
랜스 스티븐슨. 1990년생. 인디애나 페이서스 소속의 가드. 장기는 발군의 순발력과 좋은 체격을 이용한 돌파. 단점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슈팅, 그리고
성질. 슛을 성공시키고 엉덩이를 야비하게 흔들어댄다거나 공을 상대 얼굴에 들이밀며 장난질을 칠 때 보면 그는 영략없는 정글의 중간 포식자- 이를테면 살쾡이- 같다. 하지만 48분이라는 시간은 순간적인 열정과 재기발랄함보다는 참을성과 인내를 요구한다. 패스를 한번 할 때도 정석을 따르기보다는 등 뒤로, 노-룩 패스를 던지기 좋아하는 랜스에게 그런 덕목을 찾아보긴 어렵다. 하긴 그에게 그러한 신중함이 있었더라면-
아마 지금쯤 다른 곳에 있었겠지. 랜스가 인디애나 페이서스에서 뛸 수 있었던 데에는 예상치 못한 일련의 사건들이 크게 개입했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랜스의 앞날은 창창해보였다. 고교 최고의 선수였고, 대학에 들어가도 1년 뒤 프로 진출을 선언하는 일이 빈번한 미국 농구계였기에 랜스 역시 곧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NBA에 입성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그는 성폭행 (sexual assault) 혐의로 기소된다. 그리고 대학에서의 평범한 성적. 1학년을 마치고 랜스는 프로 진출을 선언했고 드래프트되지만 끝자락에서 만족해야했다. 전문가들은 그의 터지기 쉬운 성질과 기소 이력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이 선수가 훨씬 더 높은 위치에서 드래프트가 되리라 예상했던 인디애나는 주저없이 랜스를 선택했다. 60명의 선수들 중 40위.
랜스가 농구 팬들의 관심을 새로이 끌게 된 것 역시 경기와는 그닥 무관한 사건을 통해서였다. 아니, 무관하지는 않다. 분명 그 사건은 경기장 안에서 일어났으니까.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마이애미 히트가 플레이오프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 전 해 마이애미 히트는 소위 '빅 3'를 결성하면서 화제가 되었으나 팀은 파이널 (결승전)에서 패배하면서 2위에 그쳤고, 때문에 히트는 물론 그 중심에 있던 르브론 제임스조차 체면이 말이 아니던 상태였다. 특히 르브론 제임스는 파이널에서의 부진으로 인해 'choker'(겁쟁이)라는 평판까지 얻게 되었다. 페이서스와의 경기에서 파울을 당한 르브론 제임스가 자유투를 던지려 할 때, 코트 바깥에 서있던 인디애나 선수들은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그 중에서 랜스 스티븐스가 유독 심했다. 그는 자신의 양 손을 목에 대고 조르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목이 졸리다 (choke)는 단어를 비틀어서 르브론을 비웃은 것이다. 이 조롱은 곧 히트와 페이서스 사이의 갈등으로 번졌다. 경기 다음 날 히트의 최고참인 주완 하워드는 스티븐스에게 다가가서 그의 태도에 대해 훈계를 했다. 스티븐스는 해볼테면 해보라는 태도를 취했고 결국 페이서스 선수들이 달려와서 그 둘을 떼어놓아야했다. 그리고 다음 경기 중 히트의 선수 덱스터 핏맨은 스티븐스를 말 그대로 메다꽂았다. 그것을 우연히 발생한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티븐스는 복수를 당한 것이다.
당시 NBA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누군가가 물었던 것을 기억한다. "저 선수는 누군데 저렇게 까부나요?" 누군가가 대답했다. "가비지 멤버예요. 자기나 잘할 것이지." 그리고 거짓말 같은 일이지만- 랜스는 그 플레이오프 이후 전혀 다른 선수로 거듭난다.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제너럴 매니저로서, 랜스의 드래프트와 성장에 큰 영향을 끼쳤던 래리 버드는 언젠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랜스는 재능 덩어리이다. 가장 큰 문제는 그 재능을 어떻게 다듬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버드는 랜스의 스텝업을 '당연하게' 여긴 몇 안되는 내부인 중 하나였다.
이 시즌 랜스와 함께 새로운 스타로 등극한 또다른 선수가 페이서스에 있었다. 폴 조지였다. 폴 조지는 랜스에 비하면 훨씬 많은 기대를 받으며 데뷔했지만 (10픽) 다른 스타 선수들이 데뷔 전부터 받던 기대에 비하면 둘 다 언더독이었다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둘은 성향에 있어 전혀 달랐다. 랜스가 재능 덩어리였다면 폴 조지는 꾸준히 노력을 하는 타입이었고, 랜스가 특유의 투지와 재기로 수비를 뚫는 창 (Lance)같았다면 조지는 인내를 가지고 꾸준히 경기를 운영하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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