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는 Kobe Bryant겠지만 그는 이탈리아에서 유년을 보내고 필라델피아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어릴 적부터 L.A. Lakers의 열성 팬이었다는 걸 제외하면 코비는 사실 LA에 별다른 연고 자체가 없다.)
폴 피어스는 L.A. 카운티 내 소도시인 잉글우드에서 자라났다. 캘리포니아 러브에서 투팍이 외치는 그 Inglewood가 맞다.
이 광고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폴 피어스를 비롯해 몇몇 유명 선수들이 고향을 방문해 어린 시절의 그 장소에서 경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광고였는데.... 그렇지 않아도 '동네 아저씨가 농구하는 것 같다'는 평을 듣곤 하던 폴 피어스였기에 더욱 이런 모습이 인상적으로 남았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폴 피어스는 오늘날 보스턴 셀틱스의 대표적인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지난 시즌 팀을 떠나야했지만) NBA에 처음 드래프트된 이래 10년 여를 한 팀에서만 뛰어온 결과이다. 보스턴 셀틱스가 피어스의 고향에 연고를 둔 LA Lakers와 오랜 라이벌 관계라는 것, 그리고 정작 동부에서 자라난 코비가 오늘날 Lakers에서 피어스 이상의 위상을 지닌 존재라는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는 한층 더 깊어진다. 피어스도 이제는 누구 말마따나 보스턴 시민이 다 된 것 같다. 지난 해의 슈퍼볼에서 뉴 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열렬히 응원하던 것을 생각하면.
무엇보다 폴 피어스는 레이커스 팬들의 머릿 속에 쉽게 씻겨지지 않을 상처를 남긴 바 있다. 레이커스에게도, 셀틱스에게도 결코 끝나지 않을 듯하던 '침체기' 끝에 2008 년 두 팀은 NBA 파이널까지 진출했고, 그곳에서 맞대결했다. 저 유명한 매직 존슨-래리 버든의 라이벌리 이래, 그러니까 80년대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보스턴에서 벌어진 첫 경기는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동료 선수 케빈 가넷과 부딪힌 폴이 무릎을 잡고 바닥에 쓰러진 것은 그 때였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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