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ugust 18, 2013

[Sunset Boulevard]


한때 어리석게 느꼈고, 함께 비웃었던 그런 일들을 내가 하고 있다. 스스로를  쉽게 이해될 수 없는 존재로 상정하는 오만이 나를 어리석게 만든다. 사실 누구의 관심이나 이해가 특별히 필요할만큼 내가 남다르거나 훌륭한 존재는 아니지 않은가. 그냥 살면 된다. 그냥 살아야 한다.

간단한 관심과 칭찬의 말이 내 오만을 더욱 부풀렸다고, 그래서 그것들에 유독 고팠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을 다른 사람에게서 듣지 않으면 못견디는 존재니까, 나는, 혹은 나의 오만은, 사슬에 매인 작은 짐승처럼. 개 같다.

작은 일들을 부풀리고, 큰 일들은 애써 외면하는 삶의 연속. 삶이 차라리 이야기를 위해, 혹은 그것을 읽어줄 '독자'를 위해 존재하는 듯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중이다. 차라리 종교인들처럼 목적을 믿는다면, 이토록 내 자신이 어리석게도 느껴지지 않으련만, 세상에는 수많은 책이 있어 지금 서술하는 이 책이 한번의 손때를 타게 될지조차 확신할 수 없음을 나는 안다.

[Sunset Boulevard]를 떠올린다. 노마 데스몬드가 한 물 간 배우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comeback' (그 말을 싫어한다는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을 위한 시나리오를 쓴다는 사실은 무언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우리들과, 카메라, 어둠 속의 사람들 밖에 존재하지 않노라, 반쯤 미쳐버린 그녀는 넋두리처럼 지껄이면서 카메라에, 혹은 '우리들'에게, 혹은 영화를 보고 있는 어둠 속의 사람들에게 한발짝 씩 다가서지. 그녀의 모습이 먼지를 흩뿌린 듯 뿌연 카메라 렌즈- 실제로 이 영화를 찍을 당시 올드한 효과를 내기 위해 렌즈에 먼지를 뿌리기도 했다-에 다가설 때 그 모습은 마치 유령과도 같았다. [Sunset Boulevard]는 일차적으로, 영화, 그리고 '이야기' 에 대한 영화-나는 이 영화가 [American Beauty]에서처럼 죽은 자의 1인칭 내레이션으로 전개되는 의미에 대해 고민 중이다-일테지만, 누군가는 그 영화에서 삶을 볼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당신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쓰고 있는 중이라면.

어쩌면 나는 영화를 너무 많이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와 세계 명작, 소설들은 우리에게 다만 삶을 살아가는 방식 대신 그것을 이야기로 재구성하고 불행과 슬픔을 과장해서 표현하는 법들만 본성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쳐주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요즘 다시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가사가 있는 음악을 듣는다. 불쑥 불쑥, 상상에 잠길 때마다, 짜증이 치밀어 오를 때마다, 간절히 무엇을 바라게 될 때마다, 애써 그런 일들을 하려 애쓴다.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갈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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