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정일을 좋아했다. 어디서 유래했는지 알 수 없는, 얼마 전 누군가에게 반쯤은 농담으로, 반쯤은 참담함에 가까운 심정으로 고백한 나의 '운동권적 마인드'가 그의 인식과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장정일은 일상이 얼마나 비참하고 추레한지 이야기할 줄 알고, 그 일상을 돈 몇푼 받고 묘사하는 일이 얼마나- 밥을 벌어온다는 점을 제외하면- 부끄러운 일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그 부끄러움을 애써 감추고 펜대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 미디어와 '문화 자본'이 어떤 식으로 기여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다만 장정일에게 항상 권력은 아버지였고, 문화 자본의 생산자는 미국 뿐이었기에- 이 단순한 구도는 소설 속에서 마치 우화 같은 느낌이 되어버리고 만다. 가령 [너희가 재즈를 아느냐] 속 "네게도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그 아버지는 출세한 사람들만 가는 먼, 미국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려고" 어린 아들에게 햄버거를 줄창 먹이는 어머니처럼.
[하숙]을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처음 아 이건 진짜구나 싶었던 거 같다. 이 사람은 진짜구나.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작은 이유 때문이었다. 존 레논과 에릭 클랩튼, 레오나드 코헨이 같이 언급된다는 이유. 하지만 아직도 존 레논의 평화를 이야기하고 러브이즈리얼 리얼이즈러브 이매진데어이즈 노 헤븐 이래쌌는 병신들이 쌔고 쌨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존 레논은 아도르노, 벤야민, 라캉 같은 리스트로 갈 수록 불어나고 폭 넓어지는데, 그 와중에 존 레논과 그 패거리 역시 '녀석'을 혼곤히 잠들게 할 뿐이라 짚어낸 장정일의 냉소.
녀석의 하숙집 방에는 리바이스 청바지 정장이 걸려있고
책상 위에는 쓰다만 사립대 영문과 리포트가 있고 영한 사전이 있고
재떨이엔 필터만 남은 켄트 꽁초가 있고 쓰다버린 설렘이 있고
서랍 안에는 묶은 플레이보이가 숨겨져있고
방 모서리에는 파이오니아 앰프가 모셔져있고
레코드 꽂이에는 레오나드 코헨, 존 레논, 에릭 클랩튼이 꽂혀있고
방바닥엔 음악 감상실에서 얻은 최신 빌보드 차트가 팽개쳐있고
쓰레기통엔 코카콜라와 조니 워커 빈 병이 쑤셔 박혀있고
그 하숙방에, 녀석은 혼곤히 취해 대자로 누워있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꼼짝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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