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ugust 9, 2013

[Bicentennial Man]




*아직 영화를 보지는 않았다

**이 글이 떠올랐을 때 바로 쓰지 않았던 것은 그 생각에 너무나 감정이 많이 들어가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제법 지나고 쓰니 글은 시들한 느낌이지만 그만큼 '선'을 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삼촌은 40번째 생일에 울었다고 했다. 그 고백은 돌이켜보면 나를 향한 하나의 경고이기도 했다. 너 또한 그렇게 될지도 몰라. 삼촌은 그러나 우리들 중 가장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조차도 40을 넘었을 때 엄습해오는 패배감과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 대한 영욕을 어찌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나의 입은 썼다- 종종 그랬듯, 사람들은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었다. 

어떤 '사고'가 있고 나서,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의 장례식에 대해 생각하는 고약한 습관을 얻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생각했고, 어머니의 장례식을 생각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올 수 있을지, 누가 오게 될지에 대해 상상하곤 했다. 혹자의 장례식에는 나조차도 참석을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누가 그를 챙겨줘야 하겠는가? 내가 오지 않은 장례식장에서 모여 수군거리는 이들의 모습들을 떠올리며 나는 진저리 쳤다. 

40도 어떻게 넘길지 모르는 인간이 다른 사람의 죽음까지 돌봐야 한다는 것이 우스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두가지 생각의 줄기는 내가 중년과 노년을 무력감과 동일시하게 만들었다. 40 이후의 어느 누구도 내게 설득력있는 삶의 모델을 제시하지 못했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죽었다. 사고사든, 병사든, 40이 넘은 이의 죽음이 내 머릿 속 한켠에 '자연스러운 결말' 이라는 인상을 남기는 것을 나는 어찌할 수 없었다. 

그 인상은 좀더 구체적으로 이런 것이었다. 
왜 내가 여기까지 왔지? 여기가 
어디지? 끝? 끝?  
그래 너는 이제 끝이야. 외판원이 
너의 끝이야. 네 삶의 끝이야!        
                    -장정일, 안동에서 울다 중 

어제 불을 끄고 누워서...... 문득 이 영화를 생각했다. 생산 공정의 오류로 감정을 가지게 된 로봇이 미래 어느 한 가정에 도착한다. 로봇은 주인집의 딸과 사랑에 빠지고, 그 감정을 어찌 하지 못해 오랜 기간 동안 집을 떠난다. 떠나있는 동안 그는 자신의 몸을 서서히 인간으로 만들어나간다- 인간이 아니면 공식적으로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돌아왔을 때 주인집 딸은 죽고 없었지만, 그녀와 꼭 닮은 딸 (이었나 손녀였나) 이 살아있었다. 그리고 둘은 다시 사랑에 빠진다. 

 로봇이 정말 주인집 딸을 잊어버린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그녀를 가슴에 묻은 로봇의 사랑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같은 질문은 잠시만 미뤄두자.

내 머릿 속에 떠올랐던 것은 마지막 장면이었다. 로봇은 이제 완연한 인간이 되어 '죽음' 을 기다리고, 인간이 되기 위한 최후의 조건까지 충족시킨 그를 정부가 인간으로 인정해주길 기다리고 있다. 옆에는 마찬가지로 노인이 된 그의 사랑- 주인집... 손녀?-이 누워있다. 뉴스가 시작되고, 정부가 그를 인간으로 인정했다는 소식이 나온다. 로봇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옆을 돌아보지만 이미 연인은 죽어있었다. 그리고 로봇은 자신의 생명 유지 장치를 끈다. 

정말 먼... 훗날에, 정말 정말 오랜 시간이 흘러 내가 죽음을 앞두게 되었을 때- 그렇게 살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쩌면 깨달음의 순간을 얻게 될지 모른다. 로봇이 살아온 삶이 그가 인간임을 선언하는 정부의 발표로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듯, 나 역시 내 삶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한번의 기회를 얻게 될지 모르겠다. 수많은 ups and downs. 그리고 그 기회의 끝에서 나는 내 옆에 누워있는 사람을 보게 되겠지. 그 사람의 모습에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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