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그 아이가 말을 할 때면,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우르르 몰려 보석을 주워가곤 했지. 그 아이의 입천장과 혀와 잇몸이 쏟아져 나오는 돌덩이들의 모서리에 긁혀 생채기나고, 피가 흐르고, 짓무르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말야. 하지만 그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한명 쯤은 있지 않았을까. 그 아이가 말을 할 때면 와장창 쏟아져 나오는 보석 소리,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의 발 소리로 항상 소란스러웠을테지. 하지만 거기에 가려 쉬이 들리지 않는 작고 여린 헐떡거림과 어쩔 수 없이 새어나오는 고통의 흔적들을 알아채는 사람도 하나 쯤 있지 않았을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들 조금씩 미쳐있었다. 나는 그들이 남기는 미세한 광기의 흔적을 보면서- 조금씩 마모되어가는 이성을 보면서- 두려움과 설레임에 몸을 떨곤 했다. 그 광기를 내가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사랑했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사랑한 것은 나였네.
그래서 어두운 길거리를 걸으며 어느날, 나는 이 노래를 혼자 불렀지. 나의 품 속으로, 오 주여. 나의 품 속으로, 오 주여. 하염없이 반복하면서 나는 어둠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내가 내딛는 어둠의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속이 곧 내 안의 공허함이었네. 내가 나아갈 수록 나는 사실 더 깊숙이 빠져들고 있었네. 그래서 이 여행은 끝날 줄을 모르고.
새벽에 보게 된 이 만화가 나를 뜬금없이 사로잡았다. 나 역시 김닭과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없고, 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더 와닿았던 걸까. 나 역시 그녀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기억하고 싶지 않고,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나 할머니에 대해선- 너무 미안해서 그런 걸까. 너무 오랫동안 할머니를 잊고 지냈던 것 같다. 6년이라는 세월이 잊게 만든 것이 아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잊고 싶었다는 말로, 변명을 해온 내 자신이 스스로 너무 쉽게 잊어버린 것이다. 김닭이 "할머니의 기억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녀의 마음은 슬픔과 소재에 대한 욕심 사이에서 찢어져있던 것처럼- 결코 같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을 함께 유지시키기 위해 우리는 변명을 만들었다.
보이즈 투맨의 On Bended Knees 를 들으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Can somebody tell me how to get things back the way they used to be"
정외과 건물을 나오는데 동양계 미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주 잠깐 동안 보았을 뿐인데 몸이 저릿해지는 것 같은 그런 미인. 나를 대학원생으로 착각했는지 그 쪽에서 손을 살짝 흔들어보였다. 나는 말 없이 그녀를 지나쳤다. 돌아오는 길은 학교에서 대청소를 하느라 내놓은 종이 상자 냄새로 가득 차있었다.
What'll you do when you get lonely,
and nobody's waiting by your side?
You've been running and hiding much too long
You know it's just your foolish pride
Layla, you've got me on my knees
Layla, I'm begging. Darling please
Layla, Darling, won't you ease my worried mind?
I tried to give you consolation
When your own man had let you down
Like a fool, I fell in love with you
Turned my whole world, upside down
Layla, you've got me on my knees
Layla, I'm begging. Darling please
Layla, Darling, won't you ease my worried mind?
Let's make the best of the situation
Before I finally go insane
Please, don't say "we'll never find a way"
And tell me all my love's in vain..
Layla, you've got me on my knees
Layla, I'm begging. Darling please
Layla, Darling, won't you ease my worried mind?
"Won't you ease my worried mind?" 라니. 협박조에 가깝게 느껴지는- 한동안 에릭 클랩턴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 노래도 괜시리 한 층 더 삐딱하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가사지만 그래도 절절하다. 사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 유명하다던 인트로도, 노래도 심드렁하게 느껴졌는데, 어느 날 우연히 끝까지 들었다가 건반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소리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던 기억. 나도 모르게 노래를 듣다가 끝날 성 싶으면 넘기는 습관이 들어있었던 모양이다. 그러한 우연이 없었더라면 에릭 클랩턴은, 그리고 이 노래는 내게 여전히 '좋다고는 하는데 여전히 뭐가 좋은지 모르겠는' 존재로 남아있었을 공산이 크다. 그의 다른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Layla의 경험을 통해서였으니까.
Layla를 제외하고도, 이 앨범에는 아름답고 깊숙한 락큰롤/ 블루스들이 그득 그득 차있다. 밴 모리슨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저 시절 락큰롤을 하던 이들-특히 백인 음악인들-에게 밴 모리슨은 부정할 수 없는 영향력이었을테니 말이다.) 제목은 Layla and Other Assorted Love Songs. Layla와 "다른 사랑 노래들". 결국 이 앨범을 꿰뚫는 주제는 사랑이다.
그래서- 패티 보이드에게 바쳐진 노래는 비단 Layla 뿐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앨범이 에릭 클랩턴의 솔로가 아닌, 엄연한 "데릭 앤 더 도미노스"라는 밴드의 작품으로 탄생했음을 - 그래서 이 앨범을 에릭 클랩턴의 삶에 빗대어 생각하는 것 또한 심각한 오독의 여지를 남긴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되겠다.
"the last person I loved, and when I hear those sweet, sticky acoustic guitar chords, I reinvent our time together, and, before I know it, we're in the car trying to sing the harmonies on "Love Hurts" and getting it wrong and laughing. We never did that in real life. We never sang in the car, and we certainly never laughed when we got something wrong. This is why I shouldn't be listening to pop music at the moment."